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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려상에서 대상으로, 1년 만의 ‘도약’ 더 큰 무대를 꿈꾸는 알레연주단의 하모니
    제9회 경기도 우수시장 박람회 기념 제2회 색소폰 앙상블 대회가 열렸던 10월의 어느 날. 행사 장소인 경기도 연천의 전곡시장을 아름다운 색소폰의 하모니로 흠뻑 적신 팀이 있었다. 대상 수상팀인 ‘알레연주단’이 그 주인공이다. 불과 1년 전, 1회 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것과 비교하면 눈부신 성장이었다. 이런 결실을 맺고자 혹독한 연습의 시간을 보냈을 알레연주단과 지난 11월 2일, 양평의 음악실에서 만나 대상 수상의 감회와 대회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봤다. ▶인터뷰 전문은 월간색소폰 12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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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1
  • 불꽃처럼 타오른 '색소폰 열정'…권영희 한울문화예술인단체 대표
    대구에서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모를 수 없는 이가 있다. 색소폰 부는 ‘쌍둥이 자매’ 중 동생인 권영희 한울문화예술인단체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약 30년 전 색소폰의 매력에 푹 빠져 당시 생업으로 삼고 있던 국악을 단숨에 접고, 전국 각지를 돌며 유명 색소포니스트를 찾아다녔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연습실에서 보냈고, 잠을 줄여가며 5~6년의 세월동안 색소폰 연습에만 매진했다. 그저 무대에 서는 것이 좋아 각종 행사를 다녔는데 어느덧 ‘행사의 여왕’이라는 별명과 함께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런 그를 찾아 수강생이 모여들었고, 열평 남짓의 연습실을 확장해야 할 만큼 큰 규모의 한울색소폰아카데미가 만들어졌다. 음악이 좋아 시작한 일이기에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봉사 차원에서 무료 공연을 다녔더니 받게 된 표창장만 수두룩하다. 최근에는 한울문화예술인단체까지 결성해 대표로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를 지난 10월 10일 대구의 동호회 연습실에서 만났다. ▶인터뷰 전문은 월간색소폰 11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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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01
  • 색소포니스트 장인영 "날 이끈 원동력은 즐거움"
    사진=정대성 작가 보는 사람마저 기분이 좋아지는 미소와 쾌활한 목소리. 지난 7월 12일 만난 색소포니스트 장인영씨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이었다. 재밌어서 색소폰을 시작했고, 좀 더 즐겁게 연주하기 위해 지금도 매일 고민한다는 장씨. 색소폰 연주자로, 교육자로, 유튜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그가 이 모든 걸 해낼 수 있는 것은 ‘즐거움’이라는 장씨만의 원동력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수강생들도, 관객들도 모두 행복한 연주를 하는 게 꿈이라는 장씨를 만나 그의 색소폰 철학을 들어봤다. 11년. 그가 색소폰 연주자로 활동한 시간이다. 교육자로 살아온 지도 벌써 9년이 흘렀다. 고향인 전라남도 순천에서 색소폰 학원을 처음 시작했고, 경기도 평택과 안산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현재는 순천점과 안산점만 운영 중이지만 연주자이자 교육자로서, 또 유튜버로서 여러 역할을 동시에 해내고 있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이는 모두 ‘색소폰’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색소폰’ 연주자라서, ‘색소폰’ 강사라서, ‘색소폰’ 유튜버라서. 색소폰을 처음 알게 된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색소폰이라서 치열하게 살았다. 그때는 치열한 줄도 몰랐다고 한다. 그저 재미있어서 했을 뿐인데, 돌이켜보니 온 힘을 다해 색소폰만 쫓고 있었다. 처음 불자마자 결심한 연주자의 꿈 장씨와 색소폰의 인연은 고등학교 관악부에서 시작됐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악기 연주도 좋아했던 터라 입학 후 알게 된 관악부의 존재에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한다. 그렇게 관악부를 찾아갔는데 “어떤 악기를 불고 싶느냐”는 담당 선생님의 질문에 문득 색소폰이 떠올랐다. 아빠가 수년 전 배우고 집에 놔뒀던 바로 그 색소폰이었다. 그래서 그냥 “색소폰을 불겠다”고 답했고, 점차 색소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색소폰을 처음 불 때부터 마냥 재미있었어요. ‘나 이거 평생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취미로 1년쯤 배우다가 ‘이걸로 대학을 가야겠다, 연주자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어떻게 그런 확신이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운명처럼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스스로의 결심은 확고했지만, 가족을 설득하는 과정이 남아있었다. 당시 여성 색소폰 연주자가 흔치 않았던 때라 부모님의 반대가 거셌다고 한다. 아버지는 “차라리 플루트를 부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장씨를 말렸다. 그때마다 장씨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 이거 하면 평생 재밌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진짜 행복할 것 같아.” 결국 ‘행복한 삶을 살겠다’는 딸의 고집에 부모님이 백기를 들었다. 자녀가 행복하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딸의 1호 팬이 되었고, 지금은 그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자로 딸을 응원하고 있다. 부모님의 허락까지 받은 뒤, 장씨는 본격적으로 입시 준비를 시작했다. 다른 전공생보다 출발이 늦었다는 생각에 누구보다 독하게 연습했다고 한다. 매주 광주까지 레슨을 받으러 갔고, 방학이면 근처에 고시원을 잡아 하루 종일 연습에만 매달렸다. 그렇게 2년 간 준비한 끝에 지원했던 대학에 모두 합격할 수 있었다. “오히려 잘 몰랐기 때문에 겁 없이 도전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고요. 서울이나 경기권의 입시 시스템을 경험했으면 ‘난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주눅부터 들지 않았을까요.” 10년 만의 첫 여자 전공생, 최연소 졸업생으로 장씨는 그렇게 단국대 실용음악과의 색소폰 전공생이 됐다. 꿈에 그리던 입학이었지만, 막상 학교생활을 시작해보니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우선 10년 만의 첫 여자 색소폰 전공생이라는 타이틀이 무겁게 다가왔다. 장씨는 “남초사회에서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더욱 잘해야 할 것 같다는 압박감도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동안 연습해보지 않았던 합주도 장씨의 발목을 잡았다. 입시를 준비하는 동안 부족한 기본기를 채우기에 급급해 홀로 연습하는 데만 집중한 터였다. 그러니 다른 악기와 합주를 해 본 경험이 있을리가 만무했다. 장씨는 “대학에 와보니 고등학생 때부터 밴드 활동이나 그룹 활동을 경험한 친구들이 많았다”면서 “저는 반주기를 틀고 연습하던 게 전부였는데 갑자기 드럼, 베이스, 피아노 등과 협연을 하려니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고 했다. 그때마다 장씨 특유의 끈기가 발휘됐다. 벽에 부딪히면 더욱 독하게 연습했다. 점차 그런 모습을 좋게 봐주는 선배들이 생겼다. 정말로 포기하고 싶을 땐 선배들의 다독임 속에서 또다시 마음을 잡았다. 동기들이 한 번쯤은 하던 휴학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연주자로 자리 잡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결국 그는 학과의 색소폰 전공생 중 최연소 졸업생으로, 비교적 어린 나이에 연주자의 삶을 시작했다. 이렇게 앞만 보고 달린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내가 이토록 좋아하는 걸 평생 하려면 최대한 빠르게 연주자로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음악을 놓지 않기 위한 제 나름의 노력이었던 거죠.” 물론 대학 시절에는 자신이 연주자로 살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도 있었다고 한다. “국내 최고의 실력자 정도는 되어야 연주자로 살 수 있는 줄 알았어요.(웃음)” 그런 두려움이 결국에는 좋은 자양분이 됐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보니 무작정 잘하고 열심히 하는 것만이 연주자로 사는데 필요한 전부는 아니더라고요. 물론 그건 기본이고요. 점차 공연문화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들이 찾고 싶은 연주자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대학원도 갔고요. 경희대학원에서 문화예술 경영을 공부했어요. 그렇게 공부하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 것 같아요. 기획자의 시선으로 공연도 제가 먼저 기획하게 됐고요.” 그렇게 만든 게 네 차례 진행했던 ‘오픈콘서트’였다. 콘서트는 1부에서 프로 연주자들이 공연하고, 2부에서 콘서트에 온 관객들이 연주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 구성 때문에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한다. “저의 연주자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그때가 아닐까요? 잠깐 코로나19 때문에 쉬게 됐지만,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에 대비하며 새로운 걸 기획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유튜버로 새로운 도전 “연주 때문이었죠” 장씨는 색소폰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장인영 색소폰TV’와 라이브 연주로 팬들과 소통하는 ‘장인영 색소폰 연주채널’, 총 2가지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유튜브까지 시작한 것은 연주를 더욱 재밌게, 꾸준히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내와 엄마로서의 삶, 그리고 학원 운영 등 다른 역할에 충실하다보니 자꾸 연습시간이 부족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신청곡을 받고, 라이브 연주를 하다보면 책임감 때문에라도 연습을 계속할 테니까요. 말하다 보니 제가 색소폰을 정말 사랑하네요.(웃음)” 이처럼 활발한 활동 덕에 영창의 엔도저로도 선정됐다. 학원 수강생들이 영창의 색소폰을 추천해서 연주해 봤는데 좋은 인상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영창과 인연이 닿았고, 지금은 영창만의 트랜디한 사운드에 푹 빠지게 됐다. 교육자로서의 철학도 확고하다. 그는 수강생들에게 ‘배워가는 즐거움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기초 과정은 지루하고, 고급 과정은 지나치게 어려우면 연주에 대한 흥미가 금방 떨어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장씨는 “색소폰을 배우는 것은 기초부터 고급까지 모든 과정이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각 단계마다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을 늘 고민하면서 가르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씨가 이렇게 수강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은 비교적 늦게 색소폰에 입문한 경험 덕분이었다. “고등학생이 돼서야 색소폰을 시작했잖아요. 항상 뒤처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급한 마음도 컸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단기간에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선생님의 조언을 허투루 듣지 않았고, 다른 선배 연주자분들의 공연도 꼼꼼히 보면서 어떻게든 배우려고 노력했죠. 그렇게 쌓아온 노하우들을 잘 다듬어서 수강생분들에게 전해드리고 있는 것 같아요.” 종횡무진이라는 단어가 꼭 어울리는 장씨. 그는 인터뷰 마지막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순천에서 처음 색소폰을 시작하고, 그곳에서 성장하고, 여전히 많은 고향 팬의 지지를 받고 있기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는 것. 무엇보다 순천시민들의 남다른 예술에 대한 사랑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욱 많은 공연이 순천에서 열리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순천이 정말 아름답잖아요.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민들이 여유가 넘치고, 향유하는 것을 좋아해요. 문화예술을 정말 사랑하고요. 그래서 제가 순천 출신 연주자로서 한 가지 목소리를 내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서울 경기권에서 열리는 좋은 공연들이 순천에도 자주 찾아와줬으면 한다는 거예요. 순천에 더욱 많은 문화의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Saxophone Setting 알토 색소폰 알버트웨버 슈페리어2 리드 java 2 1/2 리가처 실버스틴 헥사 소프라노 색소폰 알버트웨버 S76GP 리드 java 2 1/2 리가처 실버스틴 헥사 GP 테너 색소폰 알버트웨버 T76RG 리드 AW 2 1/2 리가처 실버스틴 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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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01
  • “감동을 주는 연주자로 기억되고 싶어요”
    “감동을 주는 연주자로 기억되고 싶어요” 색소포니스트 김지석 색소포니스트 김지석 씨와의 인터뷰는 이번이 두 번째로, 구면이었다. (그의 음악 세계 또는 재즈 뮤지션이 되기 위한 여정이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면 〈월간색소폰〉 2020년 9월호를 참고하면 될 것 같다.) 약 3년 만에 만난 그는 일면식이 있었던 탓인지 전보다 편안한 분위기를 풍겼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3년간의 시간 동안 뮤지션으로서 가지는 변화와 성장의 단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간 겪었던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글 안지인 기자 색소포니스트 김지석(이하 김지석 연주자)는 2021년에 두 번째 정규 앨범 〈Anderson's Secret Life〉를 내고 같은 해에 떠난 363일의 긴 여행에서 얻은 영감으로 현재 3집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한양대학교에서 학과장, 대학원 주임을 맡아 후배 뮤지션 양성에 힘 쏟으며 자신 또한 그에 못지않게 배워나가는 중이라는 김지석 연주자는 여행을 통한 새로운 각도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견고히 만들고 있다. 안녕하세요. 김지석 연주자님. 오랜만에 다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학교에서 안식년이라는 시기가 7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데, 1년 동안 학교를 쉬면서 개인적인 공연 활동을 하거나 외국 교환 교수 또는 단순히 재충전의 기회로 사용할 수 있는 있는 시간이 주어져요. 당시 코로나가 극심했던 시기라 연주는 못할 것 같고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 새로운 경험들을 하자는 취지에서 여행을 하기로 했죠.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각국의 다채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또 새로운 음악들도 많이 만났어요. 굉장히 과감한 결정을 하셨네요. 1년 동안의 여행이라면 다양한 경험을 하셨을 것 같은데요? 보통 일주일 정도 놀러 가면 좋은 기억으로 돌아오잖아요. 그런데 1년을 여행하니까 정말 별의별 일을 다 겪게 되고 희로애락이 다 생기더라고요. 즐겁고 행복한 경험도 있지만 좌절하고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적도 많았어요. 처음에는 뉴욕에서 한 달 있으면서 지인들과 공연도 하고 예전에 제가 살았던 경험들 기억들을 추억하고 싶어서 이곳저곳 다니며 친구들과 이야기도 하고 사는 것도 보고 그랬죠. 제가 떠난 지가 벌써 15, 6년이 지났으니까요. 그다음에는 멕시코로 쭉 내려와서 코스타리카, 에콰도르,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한 군데에 한 달 정도씩 있었어요. 그러다가 이집트로 와서 터키로 가고 터키에서 그리스로 유럽에서 3, 4개월 정도 있다가 한국으로 왔거든요. 여행을 통해 느꼈던 점들 혹은 인상 깊었던 일들이 있었나요? 뉴욕에서 한 달을 보낸 후 남미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살아야겠다는 생존 문제가 더 급박해지기 시작했어요(웃음). 문명국도 있지만 개발도상국이 많아서 여러 가지로 힘든 점이 있었고, 그렇다 보니 음악을 제가 직접 하는 경우는 없었죠. 정말 살면서 악기를 가장 오래 놓았던 시기였어요. 그런 와중에 악기를 계속 들고 다녔어야 했고 정말 몇 번이고 집으로 보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 악기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죠. 그럼에도 악기를 계속 등에 짊어지고 다니다 보니 결국은 나의 업보(?)라는 느낌이 제 모습에서 은유적으로 표현되는 것 같았어요(웃음). 그럼에도 인상 깊었던 것들이 많이 있었어요. 자연의 경이로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과 통하며 느꼈던 감동, 문화적인 경이로움, 깊고 훌륭한 문화들을 갖고 있는 나라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를 느낀 적도 있었죠. 남미도 나라마다 고유한 특성들이 있고 그들이 갖고 있는 음악들, 문화를 접하고 음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더 풍족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시기였어요.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느꼈을 감정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거의 10개월 동안 악기 연주를 못 했다 보니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는 욕구가 많이 생겼어요. 예전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다고 해야 되나? 매일 공연 가고 연습하고 싶을 때 하는 느낌으로 평생을 살아오다가 거의 처음으로 이런 일을 겪으니 한국에 돌아와 연주를 하면서 진심으로 기뻤어요. 타성에 젖은 기쁨이 아니라 소중하고 재미있고 너무나도 좋았죠. 여행 전에 앨범을 내고 간 상태였기 때문에 그 앨범으로 클럽이나 소극장에서 연주를 많이 했고 재즈보컬리스트 마리아 킴 씨와 페스티벌 공연을 다니기도 했고요. 그리고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재즈 뮤지션들이 있는데, 프로젝트가 항상 있어요. 외국에서 그들의 뮤지션 친구들이 한국으로 와 같이 투어를 하게 되면 저와 함께 기획 공연 연주도 했었고, 12월에는 오케스트라와 협연해서 ‘클래식과 재즈의 만남’이라는 테마로 예술의 전당에서 연주를 했어요. 〈Charlie Parker With Strings〉라는 앨범이 있거든요. 찰리 파커가 알토 색소폰으로 솔로 연주를 하고 뒤에서 스트링이 같이 어우러져서 클래식과 재즈가 만나는 시도의 초창기라고 해야 되나. 그런 시도의 클래식적인 버전으로 제안이 들어와서 솔로이스트로 협연했고, 이후에도 계속 제 공연을 잡아서 하고 있어요. 여행 이전과 음악적으로 달라진 부분이 있었나요?. 접근 방식, 콘셉트, 바라보는 각도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긴 시간 동안 연주를 안 하다가 했을 때 테크닉적인 손실이 크잖아요. 손가락이 돌아가던 게 안 돌아간다든지, 음정이 잘 나던 게 안 난다든지. 그걸 감안하기 위해서는 아껴 써야 되는 느낌 혹은 군더더기나 불필요한 거를 줄이고 조금 더 짜임새 있고 요약적인 느낌으로 음악을 표현해야 되는 그런 환경으로 본의 아니게 몰려간 거니까요. 더 간결하면서도 의미 있는 솔로를 하려는 각도가 예전에 비해서 더 생긴 것 같아요. 현재 3집 앨범과 즉흥연주 기법 내용이 담긴 책을 쓰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3집 앨범을 구상 중에 있고 곡을 써나가고 있어요. 첫 번째 앨범의 콘셉트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나의 정체성,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가에 대한 고뇌를 주제로 잡았었고, 두 번째 앨범에서는 나의 일상 속 생각과 느낌을 담았다면 이번에는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보고 싶어요. 꼭 그게 장르적으로 음악적 장치가 새롭다기보다는 조금 더 추상적인 개념으로 예전에 시도하지 못했던 것, 사운드를 스스로를 제한하지 않고 조금 더 프리하게 생각하면서 시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니면 1년간의 여행을 테마로 해서 그때 보고 느꼈던 것들을 하나의 스토리로 잡고 작업을 하는 것도 제 스스로에게는 그때의 기억들이나 경험들이 음악적으로 어느 정도 반영돼 훗날에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또 제가 학교에서 즉흥 연주를 오랫동안 가르치며 들었던 생각이 “일반인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즉흥연주를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뭘까?”였어요. 저도 처음 악기를 잡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일 때 즉흥연주에 대해서 조금 더 개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있을까 해서 찾아봐도 대부분의 수준이 너무 그 단계를 뛰어넘는 경우가 많았어요. 책에 적힌 스케일 연습을 해도 즉흥연주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방법론적인 부분부터 시작해서 재즈 전문 연주자들이 하는 정도 수준의 비밥 즉흥연주까지 아우를 수 있는 즉흥연주 기법에 대한 책을 계속 쓰고 있어요. 현재 거의 완성 단계이고 올해 여름 즈음에 나올 것 같아요 . 나는 현재 어떤 연주를 하는 사람이고 앞으로 어떤 연주를 하고 싶은 사람인가요? 제가 어떤 연주를 하고 있는지는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어떤 연주를 하고 싶은 사람인지는 알 것 같아요. 모든 예술이 그렇겠지만 특히 음악은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느끼는 감정이 감탄이나 감동 둘 중에 하나인 것 같거든요. 화려한 기교와 재능으로 탄성을 자아내는 감탄과, 그런 기교가 아닌데 전달되는 게너무 강렬해서 뭉클해지는 그런 감동 그 두 가지의 경험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감탄보다는 감동을 주려고 노력하는 음악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항상 “감탄을 주긴 줘야 되는데”하고 생각하죠(웃음). 감동이라고 하면 뭔가 호소력 있는 연주 이렇게 동의어처럼 생각할 수 있잖아요. 얼핏 생각하면 호소력이라는 게 큰 다이내믹을 연주로 표현하거나 혹은 간절하고 음악적인소리로 인간의 감정을 비유하는 느낌만으로 생각하기 쉬운 것 같아요. 그런데 제 생각엔 꼭 그것도 아닌 것 같거든요. 결국에는 음악은 언어의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만 언어는 아니잖아요. 그렇기때문에 쳇 베이커가 연주할 때 보면 굉장히 무미건조하게 느껴질정도로 모노토닉하게 연주를 하거든요. 큰 다이내믹으로 연주하지 않아요. 마일즈 데이비스도 그렇고요. 그래서 쿨재즈라는 표현이 생겨났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걸 들을 때도 감동을 받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감동을 주는 연주자로 기억되고 싶다”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이 말의 의미에 대해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감동을 주는 연주’라는 개념을 조금 더 깊이있게 연구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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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01
  • 색소포니스트 안드레황
    솔리스트 색소폰 연주자 안드레 황은 세계적인 색소포니스트 Tran Manh Tuan(쩐 만 투안)을 사사하고 Connie Talbot(코니 탤벗), Paul Potts(폴 포츠) 전국 투어, SK아트리움 SJxAndre 단독 콘서트, 방송 출연 연주 등 다양한 영역에서 연주자로서의 면모를 나타내고 있다. 1집 솔로 앨범 〈Butterfly〉 발매를 시작으로 자신만의 음악적 입지를 만들어 가고 있으며, 각종 투어 공연 및 강의 시장에도 발을 내디디며 대중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하고 있다. 대중의 반응,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 부모님이 음악 계통 회사를 운영하셨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15살에 색소폰을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피아노나 작곡을 배우다가 부모님의 권유로 미디 음악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죠. 피아노보다는 뭔가 더 특별한 악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트롬본을 했는데,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날 아버지가 색소폰을 집에 가져오신 적이 있는데, 기존에 다른 악기들을 여럿 다뤄보아서 그런지 일주일 만에 연주가 어느 정도 되었어요. 그러니까 너무 재미있었죠. 그렇게 색소폰이라는 악기를 시작하게 됐고 내가 진짜 이 악기를 메인으로 삼아서 전공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고등학교 축제 때 연주를 하고나서부터였죠. 당시에는 고등학생이 색소폰을 연주하는 게 흔한 일이 아니었어요. 축제 공연을 한 다음날 지역에 있는 웬만한 친구들이 저를 다 알더라고요. 내 색소폰 소리에 대중들이 반응하는 리액션에서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나오더라고요. 그 길로 색소폰에 빠져서 계속하게 됐던 것 같아요. 스승 Tran Manh Tuan(쩐 만 투안)과의 만남 입시를 봐서 단국대학교 색소폰 실용음악과에 들어가 학교를 다니던 와중에 색소폰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어요. 연주하고 싶은 스타일이 있는데, 그런 스타일로 연주하는 사람이 한국에 없기도 하고 그런 쪽으로는 한국에서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 었어요. 그런 목마름이 있던 와중에 방학을 맞아 베트남 호찌민에 사시는 숙모 댁에 놀러갔다 귀국 전날 재즈 클럽에 가게 되었어요. 거기서 연주하는 사람이 너무나 제가 원하는 스타일로 연주를 하고 너무 잘하는 거예요. 한국으로 돌아와서 아버지께 이런 사람이 있었고, 진짜 잘하더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더니 저희 아버지가 아티스트 홈페이지를 통해 그 사람에게 바로 전화를 거셨죠. 아들이 연주를 보고 와서 당신의 음악에 대해 흥미 있어 하는데, 아들을 보내면 가르쳐 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선생님께서 바로 “Sure”라고 대답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학교를 휴학하고 한국에 돌아온 지 일주일 만에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갔어요. 선생님도 놀라시더라고요. 진짜 일주일 만에 오니까(웃음). 호찌민에서 3년 정도 있었는데, 선생님 집에서 같이 살면서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하고 연습하고 합주하고, 레슨받고 저녁 7시에는 재즈클럽에 출근해서 밤 12시까지 연주하고 매일 공연했죠. 선생님과 잼을 하면서 연주 실력도 좋아지고 톤도 좋아지고 정말 많은 걸 배웠죠. 연주자 활동의 첫 발자국, 앨범 〈Butterfly〉 개인 싱글 앨범은 3곡으로 디지털 싱글로 냈었어요. 제가 유학을 다녀와서 활동을 시작할 시기에 첫 발을 내디디며 낸 앨범이죠. 첫 번째 곡과 두 번째 곡은 기타리스트 이근형이라는 정말 존경하는 분이고 가요계의 거장이신데. 그분께서 두 곡을 만들어주셨고. 한 곡은 제가 썼거든요. 펑키곡인데 퓨전 곡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첫 번째 두 번째 곡 같은 경우는 블루스적인 요소도 있으면서 발라드적인 요소가 있고요. 좀 몽환적이면서도 제 개성을 표현한 앨범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 음악적인 방향과 성향, 어떻게 보면 저에 대해서 알리고 싶어서 낸 앨범이기도 하고요. 지금은 새로운 앨범들을 계획하고 있어요. 가스펠 앨범은 이미 녹음이 끝나서 발매 시기와 방법 같은 것들을 구상하고 있고 개인 앨범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시도해 보고 싶은 게 있다면 우리나라 가요를 재즈적인 형식을 섞어 제 스타일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대중에게 친숙해질 수 있는 방법으로 편곡해서 거기에 재즈적인 요소를 더해서 색소폰과 국악기를 같이 넣는 거죠. 전통 악기적인 요소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국악기와는 이런 시도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저도 저만의 색깔로 어떻게 나타낼 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대중들이 다가가기 쉬운 듣기 편한 이지리스닝 계열의 음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강동 아트센터 연주 실황 모습 색소폰에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 아무래도 재즈를 좋아하고 실용음악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팝재즈나 퓨전 연주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공연이라는 게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기획자가 원하는 공연과 연주자가 원하는 공연은 항상 다르잖아요.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기획자가 원하는 곡이 있을 때는 그 곡에 맞추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제가 하고 싶었던 곡들을 연주합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스탠더드한 곡들을 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웃음). 제가 추구하는 연주는 색소폰에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표현하는 것이거든요. 어떤 극한에서 몰아치는 밀려오는듯한 감정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아직 저는 제가 그렇게 원하는 만큼 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제 스스로를 평가했을 때 그렇게 연주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서 계속 그런 방향으로 연주를 하려고 연습하고 있고 노력하고 있는중입니다. ▶베트남 공연 현장 “소울을 표현하는 게 내가 음악 하는 이유” 선생님께서 제게 가르침을 주실 때 “색소폰은 너의 감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테크닉이 좋은 연주자들도 많고 젊은 연주자들은 비주얼(Visual)도 좋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너의 소울을 표현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셨어요. ‘소울을 표현할 수 있는 연주자’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에 저는 지금도 너무나 동의를 해요. 소리 하나로 소울을 전달하고 볼륨 하나로 다이내믹을 조절하는 그런 연주자가 되고 싶거든요. 소울을 전달하고 싶은 이유가 제가 음악을 하는 이유에요. 거기에서 제가 더 발전을 할 수 있다면 손가락도 빨라지고 텅잉도 빨라지는 연주자가 되는 거겠죠. 그런 연주자가 되고 싶고 그렇게 연주하는 연주자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계획, “공연과 강의 통해 관객들 만날 것” 현재 공연 계획은 단독 콘서트 기획과 더불어 경기문화재단과 함께하는 지방 투어 공연을 협의 중에 있습니다. 어떤 형식으로 공연을 할지 콘셉트를 정하는 단계이고 당장 이번 달 (인터뷰 기준으로 4월) 29일에는 태백시에서 진행하는 행사를 합니다. 앞으로도 그쪽과 연계해서 공연을 많이 하게 될 것같고요. 서울 유명 호텔에서도 정기 공연으로 관객과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또 일전에 창원문화재단에서 ‘수요문화예술대학’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색소폰 강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반응이 굉장히 뜨거웠어요. 주최 측에서 그런 저를 좋게 봐주셨는지 타 문화예술회관을 추천해주셔서 조만간 포항에서도 강의를 하게 될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송파에서 자리를 잡고 연습도 하고 수업도 하고 활동이 있을 때는 활동도 하고 이렇게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어요. 개인적으로 주변에 계신 분들과 만나 좋은 지식들을 나누고 (저는 음악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음악적인 이야기들 혹은 색소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표현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궁금한 분이 계시다면 오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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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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